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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의 조몬 문화에 대하여

홋카이도의 조몬 문화에 대하여

홋카이도에는 7,000여 곳 이상의 조몬 시대 삶의 흔적이 알려졌으며, 지역에 따라 차이와 특징이 있습니다.
어째서 이런 차이와 특징이 생겨났는지, 홋카이도라고 하는 섬과 그 자연이 만들어지게 된 배경을 살펴봅시다.

홋카이도 섬의
대지가 만들어진 과정

북위 41°~45°에 위치한 홋카이도는 본섬의 면적이 약 78,000km2에 달합니다. 세계의 모든 섬 중에서도 아일랜드 섬에 이어 21번째 면적을 가진 이 광활한 대지는 언제부터 존재했을까요?

지금으로부터 8000만 년 전, 홋카이도는 아직 유라시아 대륙의 일부였습니다. 대륙의 동쪽 바다에는 암모나이트 등이 서식하고 있었으며, 이 시기의 지층은 미카사시, 무카와초, 나카가와초를 비롯한 홋카이도 각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홋카이도의 동쪽 절반과 서쪽 절반의 대지가 놓여 있는 대륙판은 판과 판 사이의 이동으로 점차 가까워지기 시작했고, 5000만 년 전쯤까지는 그 경계가 되는 단층에서 서로 맞부딪치는 형태로 되어 있었습니다.

4500만 년 전쯤에는 홋카이도의 서쪽 절반과 동쪽 절반이 더 가까워지고 넓은 범위에 걸쳐 얕은 바다가 육지와 이어졌습니다. 광대한 습지와 숲, 그리고 연안의 얕은 바다에는 쓰러진 나무 등이 쌓여 결국 소라치 지역과 쿠시로 등에서 생산되는 석탄으로 형태를 바꾸게 됩니다.

홋카이도의 서쪽 절반, 동쪽 절반, 그리고 중앙부는 오랜 시간을 거쳐 2000만 년 전쯤 현재의 위치에 도달합니다. 일본해와 오호츠크해 남부의 해저도 계속 확장되어 홋카이도 부근에 바다가 펼쳐졌습니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300만 년 전쯤에는 토카치 평야와 이시카리 평야 등의 평야 지역은 바다가 안쪽으로 파고들어 광활한 후미가 형성되었습니다.

수십만 년 전쯤부터는 빙하기와 온난기가 번갈아가면서 반복적으로 찾아오게 됩니다. 2만 년 전의 마지막 빙하기에는 해수면이 120m 정도 낮아져서 사할린과 치시마 열도는 육지와 연결되었습니다. 대륙으로부터 육지를 타고 매머드와 나우만코끼리, 큰뿔사슴 등의 동물과 식물이 건너왔습니다.

그 후, 지구는 점차 온난화가 진행되어 현재에 이르렀습니다. 해수면 상승으로 홋카이도는 다시 섬이 되었습니다만, 새앙토끼 등 북방계 동식물은 시카리베츠 호수 등 풍혈이 있는 지역이나 고산 등 서늘한 곳에 서식지를 찾았고 현재도 그곳에서 살고 있습니다.

参考:北海道博物館第2回特別展『ジオパークへ行こう! ―恐竜、アンモナイト、火山、地球の不思議を探す旅― 展示・ジオパークまるわかりガイドブック』

사진 제공: 엔가루초 교육 위원회

조몬 시대 이전의 홋카이도

지구라는 커다란 활동 속에서 형성되어 간 홋카이도.
이 홋카이도에는 언제부터 사람들이 찾아와 어떠한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일까요.
홋카이도에 남아있는 유적과 당시의 자연환경에서 추정되는, 조몬 시대 이전의 홋카이도를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을 살펴봅시다.

조몬 시대 이전의 홋카이도

홋카이도에서 가장 오래된 유적의 연대는 대략 30,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어, 조몬 시대가 시작되기 전 구석기 시대부터 사람들이 삶을 영위하고 있었습니다.

과거100만 년의 지구 역사를 보면,10만 년 주기로 빙기(한랭기)와 간빙기(온난기)를 반복하고 있으며, 최신 빙기 중에서도 가장 한랭화가 진행된25,000년 전 무렵은 극지나 북반구 빙하가 발달하여 현재보다도120m정도 해수면이 낮았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홋카이도와 사할린, 그리고 아시아 대륙은 육지로 이어져 대륙에서 튀어나온 커다란 반도가 되어 있었습니다.
한랭하고 건조한 기후로 인하여 현재의 고산대와 같은 자연이 펼쳐져 있었기 때문에 식물질 식량 자원이 적어 사람들은 대륙에서 이동해 온 매머드 코끼리나 말코손바닥사슴 등의 동물을 쫓아 사냥을 하면서 이동하는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조몬 시대의 특징

온난화에 의하여 변해가는 자연환경 속에서 탄생하여 일본 열도 전체로 퍼진 조몬 시대.
남북으로 길고 가느다란 일본 열도에서 동일한 삶을 영위하고 있었던 것일까요. 또, 홋카이도와 혼슈 등 멀리 떨어진 사람들과의 교류는 있었던 것일까요.
유적에 남겨진 흔적으로 조몬 시대 사람들의 삶과 마음을 살펴봅시다.

조몬 시대의 특징

조몬 시대 최대 특징은 「정주 생활」을 실현했다는 것에 있습니다. 지금은 당연한 정주 생활이지만, 인류사적으로 보면 사냥감을 쫓으면서 「이동 생활」을 한 기간이 압도적으로 길어 정주는 인류사에 있어 커다란 전환점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세계적으로는 자연을 개척하여 농경 및 목축을 하고 식량을 증산 및 비축할 수 있게 되고 나서부터 정주가 시작되나, 조몬 시대 정주는 수렵, 어로, 채집을 생활의 기본으로 하면서 자연을 크게 변화시키지 않고 정주를 실현했다는 부분에 다른 선사 문화에는 없는 개성이 있습니다.

조몬 시대의 기술 및 교류

조몬 시대 사람들은 빗이나 토기에 옻칠을 하여 마무리하거나 단단한 비취를 가공하여 장식품으로 만드는 등 고도의 기술을 갖고 있었습니다. 특히 옻칠 제품은 약9,000년 전(가키노시마B유적)이라는 세계 최고(最古) 수준의 것도 있습니다. 또한 천연 아스팔트를 접착제로 쓰는 등의 기술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옻칠, 비취, 아스팔트는 쓰가루 해협을 넘어 홋카이도에 들어왔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한편 홋카이도에서 화살 끝에 붙이는 화살촉(석촉)이나 칼 소재가 되는 흑요석이나 돌도끼 소재가 되는 녹색암의 일종(통칭 아오토라석)이 혼슈로 건너가, 바다를 넘는 교류와 교역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조몬 시대 이후 홋카이도의 행보

혼슈 이남에서는 대륙에서 벼농사가 도입되어 야요이 문화로 이행되어 갔는데, 홋카이도는 과연 어떠한 역사와 문화를 만들어 나갔을까요?
주변 지역과 관계를 맺으며 성립해 나갔던 조몬 시대 이후 홋카이도의 행보를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야요이 문화와 속조몬 문화

3,000년 전 무렵, 규슈 북부에 대륙 동방과 한반도에서 벼농사가 전해져, 청동기와 철기를 동반한 야요이 문화가 일본 열도에 퍼져 나갔습니다. 2,400년 전 무렵에 벼농사가 도호쿠 지방 북부까지 미치자, 조몬 문화는 끝을 맞이합니다. 그러나 홋카이도는 수렵 채집을 생활의 기본으로 하는 조몬 문화를 계승한 ‘속조몬 문화’로 이행했습니다. 홋카이도에서 벼농사가 시작되지 않았던 이유는 한냉한 기후뿐만 아니라, 풍성한 자연 때문으로 여겨집니다.


속조몬 문화 전반에는 홋카이도 내에서도 지역에 따라서는 혼슈의 야요이 문화와 북방 대륙과 관계를 맺었고, 후반에는 혼슈의 고훈 문화와 활발한 교류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철기의 유입과 더불어 석기가 사용되지 않게 되어 갔습니다. 그러나 토기에는 계속해서 조몬 문양이 새겨졌고, 조몬 문화에서 내려온 전통은 계속 유지된 것으로 여겨집니다.